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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니(지록위마, 指鹿爲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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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니(지록위마, 指鹿爲馬)

김규남 박사.jpg
▲김규남 박사.

[보령일보]중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거론되는 한 명이 진시황일 것이다. 그는 13살의 나이(기원전 238년)에 전국시대에 가장 강했던 진나라의 왕에 올랐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모친인  장양 왕 자초의 아내였던 태후, 조희와 대상인 여불위가 섭정을 하였으며 제위에 오른 지 9년이 지나면서 직접 정사에 관여하여 전국 각지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국력 향상과 정복 전쟁을 하였다.

 
진왕 정(政)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주변국을 차례로 정복하면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마감시켰다. 39살의 나이에 천하를 평정한 진왕 정은 국왕(國王)이라는 칭호 대신 삼황오제의 '황'과 '제'를 합쳐 황제(皇帝)라 칭하고, 자신이 최초 황제이니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 부르라 하였다. 하지만 불로불사의 삶을 살고자 했던 진시황은 다섯 번째 순행 길에서 객사하니 그의 나이 50세였다.

기원전 210년 7월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는 거짓 조서로 똑똑하고 바른 소리를 잘하는 태자 부소(扶蘇)가 황제가 되면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 염려하여 부소를 자살하도록 하고 어리석은 어린 호해(胡亥)로 2세 황제를 삼아 경쟁 관계에 있던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죽인 조고는 승상의 자리에 올라 결국,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秦始皇本紀)에 의하면 진나라 두 번째 황제 호해 시기에 모반을 기도하던 환관 조고는 여러 신하들이 어느 정도 따를까를 시험하기 위해, 사슴(鹿)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이것은 말(馬)입니다.” 하자 황제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馬)이라 하오?” 하였다. (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曰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그 시기 진나라는 농민 봉기가 전국을 휩쓸고, 국력이 쇠약해져 풍전등화의 위기 조고는 천하가 대란에 빠지고 조정에도 자신의 심복들이 깔려 있는 이때야 말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황제 호해는 권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는 조고를 따르는 자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하지만 조고는 만약을 대비하여 여러 신하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鹿) 한 마리를 호해에게  끌고 와서 "이것은 말(馬)"입니다 하자 호해는 웃으면서, "그것은 말이 아니고 사슴(鹿)" 이라며 시종과 신하들에게 사슴(鹿)을 보이며 사슴(鹿)인지 아니면 말(馬)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거의 대부분의 신하들이 말(馬)이라 대답하고 몇몇 신하들만이 사슴(鹿)이라고 할 뿐, 자리를 파한 후 조고는 사슴(鹿)이라고 한 자는 모두 죽였다.

따라서 자신의 욕심과 부귀영화에만 빠져 사실이 아닌 것을 호도하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말하는 조고처럼 행동한 적은 없는가?, 또한 거짓이 사실로 둔갑하자 그것은 사슴이라고 하다가도 말이라고 믿은 적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개인 간의 거짓말은 속이고 속인 개인으로 끝날 수 있지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속이려고 한다면 이는 공동체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일이므로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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