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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엘리트 능력주의 오만'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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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윤 칼럼] '엘리트 능력주의 오만'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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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일보] '민주주의의 불만'은 유명한 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마이클 샌델이 쓴 책의 이름이다. 

 

이 책은 1996년에 (원제 Democracy’s Discontent)’처음 출판되었고 그 이후로 민주주의 이론과 미국과 그 밖의 서구민주주의 사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즉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느끼고 있는 불만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가? 그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해밀턴은 미국이 강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금융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해야 한다고 믿었다. 해밀턴은 “인간에게 지배적인 열정은 야망과 이익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열정이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개인의 이기심을 국가 발전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관점 역시 해밀턴의 기여는 미국을 상업과 금융의 경제적 초강대국으로 탄생시킨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샌델은 미국 자본주의의 특징이 지금의 불평등과 사회적 혼란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지난 25년 동안 더욱 골이 깊어지기만 했다. 더욱이 2008년 금융 위기, 트럼프 현상,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 민주주의는 더욱 더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능력주의와 공정성

 

그는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이유는 능력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보통 능력을 좋은 것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능력을 보상받아야 공정한 사회라는 믿음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폭력과 압력으로 둔갑하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능력)으로 성공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그들의 능력으로 얻는 모든 결과물(성과)을 독점적으로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불평등을 능력과 노력의 차이로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능력주의’를 ‘공정한 정치, 사회 제도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들의 생각대로라면 가난한 사람은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 중에도 노력은 했지만, 주변 환경이 안 좋아서, 또는 운이 안 따라서 성과를 낼 수 없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약삭빠르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미국식 능력주의는 이들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했다고 샌델은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회가 공정한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핵심은 누가, 무엇을, 왜 누리는가에 답을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자격에 따라 기회와 보상을 누린다고 가정했을 때 만약 가장 큰 보상을 받는 사람이 가장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라면 성공한 사람은 어떤 미덕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승자는 보상을 누려도 된다.'라고 여길 것이다. 그 전제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공정하게 경주를 시작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 경주는 공정하다고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도움이나 운이 성공을 결정했다면 승자가 상을 받는 것이 도덕적으로 마땅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승자가 받는 혜택과 보상에 대한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도 승자와 패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풍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더욱 골이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양편을 서로 다른 눈으로 보게 했다. 이점을 좀 더 미세하게 파고들어 가 보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커진 것과 관련이 있다. 더욱이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이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공과 실패는 불평등의 심화를 동반했다.

 

능력주의에 제동을...

 

세계화가 진행된 지난 40년간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성공을 스스로 일궈낸 성과이자 자기 능력의 척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시장이 승자에게 주는 보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성공을 온전히 자신이 이뤘다고만 여긴다면 패배하는 사람이나 뒤처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떨까? 그들이 사회적 낙오 속에 비참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고 할 것이요, 패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한다.

 

이성이 지배하는 인간 사회에서 성공을 이런 식으로 여기는 것은 윤리적으로 너무 가혹한 일이요, 이성을 가진 인간이 할 일은 아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겉보기엔 매력적인 능력주의 원칙에 기인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분열적인 사고요, 승자독식의 사고방식이다. 

 

더욱이 능력주의 원칙은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을 경우 승자가 보상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 점 때문에 최근 수십 년 동안 승자와 패자 사이 분열의 골이 더 깊어졌다. 승자는 자신이 성공할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고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기까지 했다.

 

샌들은 이것을 '엘리트 능력주의적 오만'이라고 부른다. 이는 성공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빚을 졌다는 걸 잊는 처사요, 독선이다. 가족, 교사, 이웃, 지역 사회, 국가 등 현실의 인간은 다양한 연고를 바탕으로 빚을 지고 있다. 

 

성공 과정에서 빚을 졌다는 사실과 운의 역할을 잊어버릴 때 엘리트는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독식에 눈이 멀게 된다. 이것이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고 분노와 적의를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의에 제동을 걸고,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지금과 달리 정치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고? 세상에는 혼자서 빛나는 별은 없고, 또한 빛나지 않은 삶도 없다. 그저 가려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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